당신은 '멋'이 있는 사람인가? '멋'은 차림새, 행동, 됨됨이 따위가 세련되고 아름답다는 뜻이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멋이 있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는데 멋이 있기 위해선 조금의 여유가 필요하다. 시간적 여유, 경제적 여유, 마음의 여유 말이다. 시간과 마음까지는 어찌해보겠는데 내 취향을 오롯이 즐기기엔 경제적 여유는 조금 부족한 느낌이다. 그럴 때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나보다 멋이 있는 사람과 함께 하면 그 부분이 채워지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오늘은 카페 주인의 '멋'과 여유를 느낄 수 있었던 곳, '원두까사'를 소개해 볼까 한다.
며칠 전부터 밖에서 커피 한 잔과 함께 따뜻한 토스트가 엄청 먹고 싶었다. 아이들 등교 시키고 나서 일찍부터 남편과 함께 집을 나섰다. 참으로 찬란한 날씨다. 이런 날엔 집에 있기가 힘들다. 일광 쪽에 '문토스트'가 있었던 게 기억나서 찾아갔더니 쌀국수 집으로 업종을 바꿨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아쉬운 마음에 송정으로 가볼까 차머리를 틀어 드라이브를 하던 중 찰나의 순간 내 귀를 사로잡는 아름다운 선율이 있다.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재즈 음악. 언제나 나의 아침은 모닝 재즈와 함께 시작하는데 이곳 음악은 나와 취향이 맞다. 마침 커피와 샌드위치 팻말이 있어 들어가 보고 싶어졌다. 이 길을 차로 수없이 다녔어도 한 번도 관심을 기울인 적이 없던 곳이었다. 해안선을 끼고 멋진 대형 카페들이 수두룩하기에 나 또한 작은 카페 따윈 그냥 지나쳐버렸었다. 그렇지만 이곳이 오늘 나를 끌어당긴 것은 오롯이 음악 때문이었다.
'까사'란 말은 이탈리아어로 '집'이란 뜻이다. 원두까사는 작지만 멋으로 가득 차 있다. 입구부터 4인용 테이블과 의자, 오토바이의 조합이 미장센을 연출한다. 거기에 음악과 따스한 햇빛은 덤이다.
'어서 오세요!' 밝은 인사와 함께 중년의 아주머니 두 분이서 분주히 움직이고 계시다. 아마도 우리가 오늘의 첫 손님인 듯하다. 카페에 들어서면 이 집 괜찮을 것 같다란 느낌이 오는 곳이 있는데 이곳의 커피와 샌드위치는 먹어보지 않아도 맛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카페를 구경하기 전 먼저 주문부터 했다.
어디서든 시그니처 메뉴는 큰 실패가 없다. 시그니처 샌드위치와 따뜻한 아메리카노 두 잔을 주문했다. 커피 농도를 여쭤보시길래 진하게 마시겠다고 했다.
이곳 메뉴를 보니 가벼운 식사로 제격이다. 추운 날씨엔 커피보다 따뜻한 수프가 더 끌린다. 날씨가 더 추워지면 따뜻한 양송이 수프와 샌드위치를 먹으러 와야겠다 생각했다.
시그니처 샌드위치는 6,500원, 아메리카노는 5,000원이다. 스프는 5,000원이다. 작은 카페에 참으로 다양한 메뉴가 있다. 두 분이서 솜씨가 꽤 좋으신 가 보다.
이런 개인 카페엔 카페 주인의 취향이 묻어나기 마련인데 이곳은 취향이 묻어나는 정도가 아니라 뚝뚝 흐른다. 소품 하나하나 직접 관심을 가지고 모았다는 걸 척 보면 알겠다.
오래된 앰프와 진공관 오디오, 장비들이 잘 관리되어 있는 걸 보면 주인분께서 음악뿐 아니라 음향 장비에도 조예가 깊으신 듯하다. 2층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2층으로 향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벽 쪽은 폴라로이드 사진이 빼곡하다. 모두 오토바이 동호회 사진인데 주인의 취미가 라이딩인신가 보다. 각양각색의 오토바이와 라이더들의 사진을 보니 참 멋지다. 이런 취미를 가진다는 게 여유 없이는 힘들다는 걸 알기에 '멋'을 추구하는 이들의 삶이 부럽고 좋아 보인다.
2층은 음악이 머무는 작은 갤러리다. LP 명반들과 첼로와 NOLA 스피커, Lectron 앰프까지 모든 것이 음악을 즐기기에 최적화된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이곳에 들어서면 공간을 감싸는 풍부하고 부드러운 음향에 감탄하게 된다. 차원이 다른 소리가 놀라워 스피커와 앰프를 검색해 보니 NOLA 스피커가 1200만 원대, 진공관 앰프는 Lectron JH 50으로 유명한 모델이다.
주인이 음악에 쏟아부은 열정과 경제적 여유 덕분에 내 귀가 아주 호강했다. 내가 좋아하는 재즈 음악을 좋은 음향 장비로 마음껏 들을 수 있다니 이것만큼 힐링 되고 행복한 것이 없다. 커피와 샌드위치마저 맛있다면 이곳은 나의 아지트가 될 것이다.
2층 발코니에서 바라본 전경, 바다가 보인다. 이곳에서 불어오는 가을바람을 느끼며 멍 때리고 있으니 세상 여유롭다. 이 아침이 영원히 계속되기를 바랄만큼 평온한 순간이었다.
'사모님, 커피와 샌드위치 나왔습니다.' 따뜻한 음색이 듣기가 좋다. 아주머니께서 직접 가져다주신 샌드위치와 커피, 진하게 마시겠다고 하니 따로 따뜻한 물과 비스코티 비스킷을 서비스로 주셨다. 같은 값이면 이렇게 세심한 배려를 해주는 곳이 좋다. 뭔가 정이 느껴진다고 할까.
라테 아트가 있으면 우유 거품이 더 포근하고 감미롭게 느껴진다.
신선한 야채와 햄, 계란, 피클이 들어간 시그니처 샌드위치. 속이 든든하게 채워져 보기에도 맛있어 보였다. 먹어보니 빵이 조금 아쉬웠지만 전체적인 맛은 꽤 괜찮았다. 정겨운 맛이다.
탄단지 완벽 조합. 피클 들어간 샌드위치를 좋아한다면 시그니처 샌드위치를 주문할 것.
씹으면 파사삭 소리가 나는 얇은 비스코티 비스킷, 커피와 가볍게 즐기기 좋다.
커피 맛도 좋다. 풍부한 원두의 맛이 느껴지고 맛의 밸런스가 좋다. 산미가 적은 커피로 아침에 즐기기에 딱이다. 샌드위치와 조합도 어울린다.
폴리스, 본조비, 파바로티, 마이클 잭슨 등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들의 앨범을 구경할 수 있다.
카페 주인의 수집 영역은 어디까지일까. 한 쪽 벽면은 영사기와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진열되어 있다. 이 공간에서 타인의 취향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얻는 동시에 카페 주인분께서 어떤 삶을 살아오셨는지 무척 궁금해졌다.
음향이 너무 좋아서 오랫동안 머물고 싶었지만 시간이 허락하지 않아서 아쉽게 일어나야 했다. 트레이를 반납하고 나오는데 아주머님의 따뜻한 미소와 정겨운 마중 인사가 오랫동안 귓가에 맴돌았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저도 고맙습니다. 제게 특별한 아침을 선물해주셔서.
다음엔 더 여유 있게 음악을 즐기러 와야겠다. 가까운 곳에 이런 멋진 곳이 있었다니 여태 몰랐던 것이 신기하기만 할 따름이지만 다음이라는 기회가 있으니 아쉬움은 잠시 접어두었다. 오늘도 내 보석함에 하나 저장해 둘 곳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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