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참판댁 구경을 마치고 나니 오른편에 박경리 문학관을 가리키는 팻말이 보인다. 도서관에서 <토지>를 빌려다봐야겠다고 마음 먹었던 터에 문학관 건물을 보니 반갑기 그지없다. 카페에서 쉬며 핸드폰 게임을 하고싶어하는 아이들은 자꾸 내려가자고 졸라대는데 여기만 딱 보고가자며 통 사정을 했다.
박경리 문학관은 소박한 한옥으로 지어졌다. 최영욱 시인이 박경리 작가를 어렵게 설득해 2004년 평사리 문학관이란 이름으로 개관했다고 한다. 작가는 개관식에서 최참판댁의 호화로운 기와집을 바라보며 자기 작품으로 말미암아 지리산이 훼손된 것 같아 가슴이 아프고, 지리산에 미안하다고 고백했다.
생전의 인터뷰에서 "모든 생명을 거둬들이는 모신(母神)과도 같은 지리산의 포용력" 덕분에 글쓰기를 마칠 수 있었다는 말과 뜻을 같이 한다. 현재는 작가의 이름을 딴 박경리 문학관으로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박경리 문학관은 1층으로 된 한옥 기와 건물이다. 세로 두 줄로 쓴 '박경리 문학관' 현판이 눈에 띈다. 북적이는 최참판댁과는 대조적으로 한적하다. 이곳은 박경리 작가에게 관심이 있는 관람객들 위주로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박경리 문학관 오른쪽 뜰에는 작가의 동상이 세워져있다.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며 어깨동무를 할 수 있을 만큼 낮고 조그맣게 만들었는데 관람객의 눈높이를 고려한 유족의 뜻이었다고 한다.
내부에 들어서면 아늑한 베이지톤의 벽들과 따스한 조명이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문학관에는 박경리 작가의 유품 41점, 출판사가 발간한 소설 <토지> 전집, 초상화, 영상물, 소설 속 인물 지도 등을 전시했다.
소설 <토지>의 사건과 시대별로 나뉘어진 3개의 대형 부조가 벽을 장식하고 있다.
독서대에는 <토지> 소설책을 진열해놓았다. 그 밑에는 원고지가 놓여있는데 마치 내가 작가가 된 듯 책의 한 부분을 원고에 옮겨 쓸 수 있다. 먼저 쓴 사람들이 자신이 쓴 곳이 어디까지인지 날짜별로 연필 표기를 해놓았다. 뒤따라 이어쓰기를 해도 되고 내가 쓰고 싶은 문단을 옮겨 적어도 좋다. 종이에 연필로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오롯히 연필 끝에 의식을 모아 집중하는 느낌이 좋았다.
생전에 작가가 평사리를 무대로 선택한 것은 세 가지 이유에서였다고 한다. 만석지기를 주인공으로 설정해 드넓은 평야가 있으며, 지리산이 안고 있는 우리 민족의 비극적인 역사가 뒷받침이 되는 곳이어야 했다. 마지막으로 주인공들이 쓸 토속적인 언어, 경상도 방언을 쓰고 싶어서 섬진강을 낀 경남의 끝자락, 평사리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토지(土地)>는 5부작 장편소설로 원고지 4만여 장, 등장인물만 600여 명에 이른다.
장편소설 <토지>는 1969년 1부를 쓰기 시작했을 때 마흔둘이었던 작가가 예순일곱이 된 1994년, 25년 만에 서희가 최참판댁 별당에서 해방소식을 듣는 것을 끝으로 대서사의 막을 내렸다.
<토지>는 우리 한민족의 역사를 관통하는 시대적 아픔을 고스란히 녹여낸 대하 장편 소설이다.
시대가 바뀌고 그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세대를 거쳐 사라져가도 토지는 영원히 남아있다.
'역사는 우리를 망쳤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라는 <파친코>의 첫 문장처럼 잔혹한 역사 속에서도
살아남아 뿌리를 내렸던 한인들의 삶이 <토지>속의 주인공 서희의 삶과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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